오귀스트 로댕
로댕의 조각을 마주하면 왜 완벽히 매끈한 인체보다 거칠게 살아 움직이는 표면과 파편화된 신체가 먼저 눈에 띌까요? 오귀스트 로댕은 모델링의 흔적, 빛을 잘게 나누는 표면, 동일 형상의 확대와 축소, 재결합을 통해 조각을 고정된 영웅상에서 시간과 감정이 변화하는 신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매끈함 대신 살아 있는 표면
19세기 이전의 전통적인 조각이 매끈하게 연마된 완벽한 인체를 추구했다면, 로댕은 점토를 주무르고 덧붙인 모델링의 흔적을 작품 표면에 고스란히 남겼습니다. 장식 조각가로 일하던 그는 1870년대 사실주의적 초기작인 《청동시대》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조각은 표면의 돌출된 부분과 움푹한 곳에서 빛이 끊어지고 부서지며, 마치 인체가 숨을 쉬고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만들어냅니다.
《지옥의 문》이라는 평생의 형상 저장고
1880년, 로댕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새로 지어질 장식미술관의 문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단테의 《신곡》과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서 영감을 받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바로 《지옥의 문》입니다. 로댕은 평생에 걸쳐 이 문을 수정하고 변형했습니다.
《지옥의 문》은 단순한 하나의 작품을 넘어 로댕 조각의 거대한 형상 저장고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이나 《입맞춤》 같은 걸작들 역시 처음에는 이 문의 일부로 구상되었다가 훗날 독립된 조각으로 떨어져 나와 새로운 맥락을 얻게 된 작품들입니다.
반복·확대·주조가 만든 근대 조각
제3공화국기 프랑스의 국가 기념물 의뢰와 만국박람회는 로댕의 작품이 널리 확산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석고 원형을 다양한 크기와 재료로 반복해서 주조하는 근대적인 조각 생산 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한 형상이 크기와 자세를 달리해 여러 작품에서 되풀이되거나, 신체의 일부가 생략되고 파편화된 채로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1885년 의뢰받은 《칼레의 시민》이나 훗날의 《발자크 기념상》에서 볼 수 있듯, 로댕은 전통적인 기념비의 영웅적이고 과장된 자세를 버렸습니다. 대신 인간의 고뇌와 비기념비적인 자세, 집단의 감정을 표현하며 부르델, 마이욜 등 다음 세대 근대 조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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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에서 보는 빛과 시점
파리 오르세 미술관 등에서 로댕의 조각을 감상할 때는 정면이라는 하나의 시점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작품 주위를 걸으며 거친 표면 위로 빛과 그림자가 어떻게 교차하는지 관찰해 보세요.
특히 군상 조각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면, 보는 위치에 따라 인물들 사이의 긴장감과 감정의 흐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일한 완성품보다 제작 과정과 관람자의 움직임을 중시했던 로댕의 혁신은 오늘날까지도 조각을 감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