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작가1746–1828읽는 시간 7분

프란시스코 고야는 고야는 왕실 주문과 초상화의 관찰력을 유지하면서 판화와 사적 벽화에서는 미신, 전쟁, 권력과 인간의 비이성을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으로 탐구했다.

Francisco de Goya, Self-portrait, 1795
Francisco de Goya, Self-portrait, 1795

작품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사라고사에서 호세 루산에게 배우고 이탈리아 체류 뒤 마드리드 왕실 태피스트리 제작에 참여했다. 1789년 궁정화가가 되어 왕족과 귀족의 초상을 제작했지만, 1790년대 중병 뒤 청력을 잃은 후 《카프리초스》에서 사회의 어리석음과 미신을 풍자했다. 나폴레옹 전쟁과 점령의 폭력은 《1808년 5월 3일》과 《전쟁의 참화》로 이어졌다. 말년에는 집 벽에 검은 그림을 그렸고 1824년 보르도로 이주해 석판화도 실험했다.

대표작의 시각 언어

초상에서 인물의 지위와 취약성을 함께 드러내는 시선, 밝은 태피스트리 색채와 후기의 탁한 흑갈색, 에칭·애쿼틴트의 강한 명암, 비스듬한 구도와 반복되는 괴물·군중이 특징이다. 대표작은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카프리초스》, 《1808년 5월 3일》, 《전쟁의 참화》,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다.

무엇을 보며 감상할까

궁정 초상에서 화려한 의복과 표정의 긴장을 보고, 판화에서는 애쿼틴트의 어둠이 시선을 어디로 모으는지 살핀다. 전쟁 장면의 익명 피해자와 반복되는 가해자의 몸짓, 검은 그림의 불확정한 공간을 비교한다.

영향과 시대적 맥락

벨라스케스의 궁정 초상과 렘브란트의 판화를 연구했고 계몽주의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들라크루아와 마네, 피카소를 비롯해 전쟁·폭력·권력을 다룬 근현대 작가들에게 중요한 전례가 되었다. 부르봉 왕정의 개혁과 검열, 프랑스혁명 이후의 정치적 동요, 나폴레옹 침공과 스페인 독립전쟁, 복고 왕정의 억압을 모두 경험했다. 공개 주문과 사적 작업 사이의 차이는 당시 예술가의 제도적 위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