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두
하인두: 기하학적 추상에서 만다라의 빛으로
하인두(1930–1989)는 입체주의, 앵포르멜, 옵아트의 실험을 거쳐 단청의 원색과 만다라의 중심·방사 구조를 현대 회화의 리듬으로 재구성한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 화가입니다. 서구 큐비즘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 전후 한국 작가가 국제적인 추상 미술과 전통 불교 조형을 교차시키며 만들어낸 독자적인 경로를 보여줍니다.
전쟁 뒤 그룹과 큐비즘 실험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난 하인두는 한국전쟁으로 학업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후 1950년대에 제도 밖 그룹인 '청맥(1956)'과 '현대미술가협회(1957)'에 참여하며 전후 추상 미술을 실험했습니다. 초기에는 후기 인상주의와 입체주의(큐비즘)를 탐구하며 형태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인 《자화상(사색)》은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찾으려 했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앵포르멜에서 기하학 추상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하인두는 전후의 상실감을 표현하는 뜨거운 추상인 앵포르멜 운동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의 작업은 감정의 격렬한 표출에서 벗어나 기하학적 색면과 광학적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옵아트(Op Art)의 요소를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원색이 겹치지 않고 진동하는 시각적 효과를 연구하며, 무늬의 중심과 가장자리 사이에서 색이 팽창하고 수축하는 독특한 화면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단청·만다라의 중심 구조
1970년대에 들어서며 하인두는 국제적인 추상 흐름과 한국의 전통 정체성을 결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김종해와의 교류 등을 통해 불교, 동학, 단청, 선 사상을 깊이 연구한 그는 1974년 이후 대표작인 《만다라》 연작과 《피안》을 선보였습니다. 그의 만다라는 불교 도상을 문자 그대로 재현한 종교화가 아닙니다. 중심에서 밖으로 퍼져나가는 원, 마름모, 파상 무늬의 기하학적 구조에 빨강, 파랑, 노랑 등 단청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대칭적 원색을 배치하여 현대적인 회화 원리로 재해석했습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 단청 문양을 직접 인용한 부분과 작가가 새롭게 구성한 기하학을 구분해 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혼불》의 빛과 말년
1970년대 파리에서의 활동을 거치며 국제적 감각을 더한 하인두는 말년에 이르러 《혼불》 연작으로 예술 세계를 한 단계 더 확장했습니다. 《혼불-빛의 회오리》와 같은 작품에서는 이전의 기하학적 엄격함이 다소 누그러지고, 푸른 빛을 중심으로 한층 자유롭고 영적인 에너지가 화면을 채웁니다. 단색화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한국 화단에서 원색과 중심 구조를 고집하며 자신만의 한국적 추상미술의 갈래를 완성한 하인두의 여정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