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미술
추상미술은 사람이나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색·선·형태와 그 관계를 중심에 놓는 미술을 말해요. 대상을 단순화해 흔적을 남기는 작품부터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을 아예 그리지 않는 작품까지 폭이 넓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그렸을까?’만으로 접근하면 작품 앞에서 막히기 쉬워요. 사물의 이름이 답이 되지 않는 그림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갖다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붉은 면 옆에 어떤 색이 있는지, 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비슷한 형태가 얼마나 반복되는지는 실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우리 눈을 움직이고 어떤 부분에 머물게 하죠. 추상을 읽는 첫걸음은 보이지 않는 정답을 찾는 것보다, 지금 보이는 것들이 함께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가는 데 있어요.
대상을 닮지 않아도 그림이 될 수 있을까?
20세기 초 여러 작가는 그림이 외부 세계의 모습을 옮기는 역할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지 탐구했습니다. 이 과정은 한 사람이 어느 날 추상미술을 발명했다는 이야기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추상의 형성을 다룬 뉴욕 현대미술관의 전시 《Inventing Abstraction, 1910–1925》는 작가들의 만남과 서신, 전시 등으로 이어진 국제적인 교류에 주목했습니다. 파리와 뮌헨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실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들이 품은 질문도 같지 않았어요. 로베르 들로네는 이웃한 색들이 서로를 달라 보이게 만드는 현상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칸딘스키에게는 구체적인 사물을 묘사하지 않아도 감각과 감정을 전하는 음악이 중요한 길잡이였어요. 추상은 세상에 관심을 끊은 하나의 양식이라기보다, 그림이 무엇으로 작동하는지 서로 다르게 파고든 여러 시도의 이름에 가깝습니다.
들로네의 원은 왜 정지해 보이지 않을까?
들로네의 《동시적 대비: 태양과 달》은 둥근 화면 안에 원과 부채꼴에 가까운 색면이 겹쳐 있는 작품입니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제작 시기를 1913년으로 기록하고, 그림에는 1912년이 적혀 있다고 구별합니다. 제목에 태양과 달이 있지만 풍경화처럼 하늘에서 두 천체의 자리를 찾으려 하면 이 그림을 충분히 보기 어려워요. 들로네가 관심을 둔 것은 빛과 색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왼쪽 위의 밝은 원 둘레에는 파랑과 빨강이 띠처럼 둘러 있고, 아래로는 노랑·주황·초록의 조각들이 이어집니다. 큰 원을 따라 돌던 눈이 작은 색면의 경계에서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요. 푸른 부분 옆의 주황은 더 도드라져 보이고, 밝은 조각은 주변의 어두운 색과 맞물려 눈에 띕니다. 움직이는 물체를 그리지 않았는데도 색의 배치 때문에 화면을 한 번에 멈춰 보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제목은 숨은 태양 그림을 찾아내라는 수수께끼보다 감상의 범위를 넓혀줍니다. 원형의 회전과 밝고 어두운 색의 교대가 낮과 밤, 빛의 순환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죠. 화면에서 확인한 색의 움직임에 제목이 더해질 때, 단순한 색종이 조각 같았던 부분들이 시간의 리듬으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같은 격자 안에서 달라지는 색의 리듬
몬드리안의 《격자 구성 8: 체커보드 구성, 어두운색》(1919)으로 옮겨오면 화면의 규칙이 달라집니다. 들로네의 곡선 대신 수직·수평선이 작은 직사각형들을 나눕니다. 주홍과 빨강, 보랏빛 회색 계열의 색면은 비슷한 칸 안에 놓여 있지만 모든 칸이 똑같지는 않아요. 격자가 반복의 틀을 만들고, 그 안의 색 변화가 눈을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이동시킵니다.
이 작품은 몬드리안이 처음부터 우리가 익숙한 굵은 검정선과 빨강·파랑·노랑의 구성에 도달한 것이 아님을 보여줘요. 쿤스트잠룽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해설은 색면 사이의 공간이 선으로 드러나고, 선이 점차 화면에서 더 큰 역할을 맡게 되는 실험을 설명합니다. 이 1919년 그림을 보면 선은 색을 가두는 테두리인 동시에 여러 색을 한 화면에서 비교할 수 있게 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렇다고 들로네는 감정, 몬드리안은 이성이라고 나눌 수 있을까요? 몬드리안 역시 색의 관계를 통해 조화를 추구했고, 칸딘스키는 원과 삼각형 같은 기하 형태에서도 표현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기하학적 추상은 추상미술 안에서 기하 형태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지, 감정이 빠진 그림을 뜻하지 않아요. 반대로 곡선이나 자유로운 붓질이 있다고 해서 계산과 구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름을 붙이는 대신 관계를 따라가는 감상
두 그림에서 비슷한 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벌어집니다. 들로네의 화면에서는 둥근 흐름을 색의 대비가 이어가고, 몬드리안의 화면에서는 일정한 격자 안의 차이가 반복을 단조롭지 않게 만들어요. 색과 형태가 있다는 공통점보다, 그것들이 어떤 규칙으로 연결되는지가 작품의 성격을 바꿉니다.
추상미술 앞에서 곧바로 감동하거나 숨은 상징을 풀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 빨강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는 작은 반응으로 충분해요. 곁의 색과 선을 살피고 나면 왜 그랬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끝내 이름 붙이지 못해도, 처음에는 모두 비슷해 보이던 색면들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미 그림은 읽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료 더 읽기: 뉴욕 현대미술관의 추상과 작가 교류 해설 · 들로네 작품 소장 기록과 색채 해설 · 몬드리안의 1919년 작품 소장 기록 · 몬드리안의 선과 색면 실험 · 구겐하임 빌바오의 칸딘스키와 음악 해설
참고자료 · 제작 안내
- Composition with grid 8: Checkerboard Composition with Dark Colors | Kunstmuseum Den Haag · Kunstmuseum Den Haag · 공식 출처
1919년 제작과 격자 구성 작품의 재료·규격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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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nstsammlung NRW: Piet Modrian ·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 공식 출처
데 스테일의 출범과 몬드리안의 색면·격자·회전 실험을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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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osition 8 | Guggenheim Museum Bilbao · Guggenheim Museum Bilbao · 공식 출처
《구성 8》의 1923년 제작, 기하학적 형태와 음악적 추상의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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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리슨트립
자료 조사에 AI를 활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