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슨트립
마티스는 색종이를 오려 그림을 만들었다

마티스는 색종이를 오려 그림을 만들었다

개념미술 · 예술가·미술인 · 1869–1954제작: 리슨트립
https://digitalgallery.nypl.org/nypldigital/id?483434 · Creative Commons Public Domain Mark 1.0

마티스의 그림을 보면 색부터 눈에 들어와요. 얼굴에 초록빛이 돌고, 방 전체가 붉은색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저런 색이 아니었을 텐데 왜 그림 안에서는 어울릴까요? 사물 하나의 색보다 곁에 놓인 색과 어떤 관계를 만드는지를 보면 실마리가 생깁니다.

앙리 마티스는 1869년에 태어나 1954년까지 활동한 프랑스 미술가입니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드로잉, 판화도 다뤘어요. 그 많은 작업을 처음부터 외우기보다 《붉은 작업실》과 말년의 종이 오리기를 연결해보겠습니다. 무엇을 그렸는지와 함께 색이 화면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보는 거예요.

Henri Matisse, Self-Portrait, 1906

야수주의는 색을 마음대로 칠한다는 뜻일까요?

마티스를 검색하면 야수주의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20세기 초 그와 동료들이 보여준 강렬한 색과 붓질을 가리키는 미술의 흐름이에요. 눈앞의 사물이 원래 무슨 색인지 정확히 옮기는 일보다, 그림 안에서 색이 어떤 느낌을 만드는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색이나 골랐다는 뜻은 아니에요. 붉은 면이 얼마나 넓은지, 옆에 어두운 선이 있는지, 비슷한 색이 다른 자리에서 반복되는지에 따라 인상이 달라집니다. 실제 사물과 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틀렸다고 생각하면 이 관계를 놓치기 쉬워요.

《붉은 작업실》의 방은 실제로도 빨갰을까요?

《붉은 작업실》은 1911년 가을에 그린 유화이며 뉴욕 현대미술관 MoMA 소장품입니다. 화면에는 마티스의 그림과 조각, 도자기와 가구가 놓여 있어요. 그런데 벽과 바닥을 나누어보려 하면 넓은 붉은색이 먼저 눈을 붙잡습니다.

MoMA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 작업실은 붉은색이 아니었습니다. 마티스는 이 색이 화면 속 여러 요소를 연결하는 방식을 좋아했어요. 방의 원래 색을 재현하기보다 서로 다른 물건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만나게 한 셈입니다.

가구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보세요. 짙은 그림자로 부피를 만드는 대신, 붉은 바탕 사이에 남은 가느다란 선과 틈이 사물의 모양을 알려줍니다. 방 전체가 납작해 보이면서도 무엇이 어디에 놓였는지는 어느 정도 읽혀요. 깊이를 얼마나 남기고 얼마나 덜어낼지 선택한 그림입니다.

이번에는 붉게 덮이지 않은 작은 그림과 조각을 찾아보세요. 주변이 같은 색으로 이어지니 각 작품의 색과 형태가 또렷해집니다. 중앙의 시계에 바늘이 없다는 점도 흥미로워요.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진다면, 그것은 화면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감상이지 작가의 마음을 확정하는 답은 아닙니다.

붓으로 그리던 선이 가위의 가장자리로 바뀌어요

마티스는 말년에 색칠한 종이를 오려 배치하는 작업을 발전시켰습니다. 흔히 종이 오리기, 또는 컷아웃이라고 불러요. 그림을 그린 다음 그 안을 채색하는 대신 이미 색이 있는 종이를 자릅니다. 한 번의 가위질로 색의 영역과 형태의 윤곽이 함께 생기는 것이죠.

MoMA의 제작 과정 해설을 보면 조수들이 불투명한 수성 물감인 구아슈로 종이를 칠하고, 마티스가 그 종이에서 형태를 오렸습니다. 큰 구성은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작업실 벽에 배치했어요. 혼자서 모든 과정을 완성한 듯 상상하기보다 함께 제작한 과정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종이 조각은 처음부터 붙박이로 고정되지 않았습니다. 핀으로 꽂아 자리를 옮길 수 있었고, 남아 있는 핀 자국은 여러 차례 배치를 조정한 흔적이에요. 단순한 모양 하나라도 옆 조각과의 간격이나 기울기를 바꾸면 화면 전체가 달라집니다.

색종이만 보지 말고 그 사이의 흰 부분도 보세요

종이 오리기 앞에서는 색이 있는 모양을 먼저 보고, 다음에는 그 사이의 빈 부분으로 시선을 옮겨보세요. 흰 공간이 좁아지는 곳과 넓어지는 곳, 형태가 화면 가장자리에 닿는 곳을 비교하는 거예요. 나뭇잎이나 몸처럼 보이던 조각이 주변 공간과 함께 움직이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붉은 작업실》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해볼 수 있어요. 거기서는 붉은 바탕에 남긴 틈이 사물의 윤곽이 됐고, 종이 오리기에서는 잘린 가장자리가 색과 여백을 나눕니다. 두 작업이 똑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도구가 바뀌어도 색과 선을 함께 생각했다는 연결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마티스 전시에서 한 가지 질문을 가져간다면

“무엇을 그렸을까?” 다음에 “이 색을 빼거나 옆으로 옮기면 어떻게 달라질까?”를 물어보세요. 실제 작품을 만지는 대신 눈으로만 자리를 바꿔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넓은 색면 하나가 다른 형태들을 연결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처음에는 밝고 예쁜 색만 기억해도 괜찮습니다. 조금 더 머물며 간격과 윤곽을 보면 단순해 보이던 화면 안에 여러 선택이 들어 있다는 것이 보여요. 그때 마티스의 색은 장식이 아니라 그림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참고자료 · 제작 안내

제작: 리슨트립

자료 조사에 AI를 활용했습니다.